四門遊觀 통해 출가 결심
禪을 즐겨라⑧ - 제2편 선승과 공안
제2편 선승과 공안
선승의 전기는 《오등록(五燈錄)》에 전해진다. 즉 《경덕전등록(景德傳燈綠)》 《광등록(廣燈綠)》 《속등록(續燈綠)》 《연등록(聯燈綠)》 《보등록(普燈綠)》이 있다. 다시 이 5서를 제요(提要)한 《오등회원(五燈會元)》이 있고 《벽암록(碧巖錄)》 《종용록(從容錄)》 《무문관(無門關)》 등의 두주(頭註)에는 이들 책에서 인용된 선승들의 전기가 나와 있다. 현대학자들이 쓴 주석서에도 선승의 전기를 볼 수 있는데 모두 이들 책에 의존해 쓰여진 것이다.
선승의 전기는 사실(史實) 여부를 고찰할 때 약간의 문제가 있는 대목도 엿보인다. 염화미소의 장면이라든가 달마와 양무제 사이의 대면 등이 그것이다. 사가(史家)는 부정확한 사실을 부정할 지 모른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사실과 전설의 여부를 떠나 있는 그대로를 채록했다. 비록 염화미소와 관련 그 사실성이 어떠하든 이를 통해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는 선종의 참뜻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만일 달마대사와 양무제와의 회견 사실이 없었다고 해도 제시되고 있는 문답에 의해 ‘확연무성(廓然無聖)’이라는 선질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물론 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귀중한 잣대다. 반면 사적 근거가 희박한 전설이라 해도 그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며 착색되고 이상화되어 ‘선’ 그 자체로 발로되고 있는 것 또한 귀중하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연대순에 의해 각 항목의 배열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했다. 생몰연대가 없는 선승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승(嗣承)과 교우(交友)관계를 파악해 이에 의존한 바 크다. 다만 아래의 계보는 연대를 고려한 배열임을 밝힌다.
1. 석가모니(B.C. 558~479) (B.C. 623~544 불교학 사전)
카필라 성궁 빠져 나온 후
혹독한 고행 수행에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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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강병호 화백 |
석가모니(Sakyamumi)는 중인도 가비라 성주 숫도다나(淨飯王)를 아버지로, 마야(Maya)를 어머니로 음력 4월 8일 룸비니에서 탄생했다. 어릴 때 이름은 싯달타(悉達多 Siddhartta), 또는 구담(瞿曇 Gautama)이라 했다. 탄생 후 7일 만에 생모 마야부인이 죽고 이모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apati)의 양육을 받았다. 싯달타는 장성하여 구리(拘利)성주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쇼다라(Yasodhara)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Rahula)를 낳았다. 싯달타는 어릴 때부터 인생에 대해 남다른 사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제각각 다른 인생들의 괴로움을 목격했다. 특히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을 관찰하곤 인생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출가 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어느 날 밤, 사랑하는 아내 야쇼다라와 외아들 라훌라를 뒤로 한 채 시자(侍者) 차익을 데리고 달빛이 하염없이 흩뿌리는 성문을 아무도 모르게 빠져 나왔다. 카필라 성을 빠져 나와 밤새 말을 몰고 달려 온 싯달타는 먼동이 희뿌옇게 밝아올 무렵 차익을 돌려보내고 남쪽의 비사리(毘舍離)ㆍ마갈타(摩竭陀)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도(道)를 구했다. 먼저 박가바(Bhaggava)를 찾아 고행출리(苦行出離)의 도를 들었다. 다시 알라라카라마(Alarakalama)를 릿차위 족의 도시 베살리(Vesali)에서 만나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선정(禪定)에 이를 수 있는 경지를 배웠다. 그러나 이들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자리를 옮겨 웃다카라마푸타(Uddaka Ramapputa)를 찾아가 ‘해탈이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인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배웠으나 만족할 수 없었다.
마침내 싯달타는 우루빈라(優婁頻羅) 마을의 고행 숲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온갖 혹독한 고행을 거쳤다. 그러기를 6년, 극심한 고행으로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이때 싯달타는 고행이 해탈열반(解脫涅槃)을 얻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니련선강(尼連禪江)에서 목욕하며 그간의 쇠약해진 몸을 쉬었다. 그리곤 마을 처녀 수자타가 올리는 유미죽(우유로 만든 음식)을 공양받았다. 마음과 몸을 새롭게 추스른 싯달타는 가야 정각산(正覺山) 보리수 나무 밑에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았다. “등정각(等正覺)을 구할 때까지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부동의 금강심으로 단좌하여 사유하길 77일. 밤을 밝힌 새벽 별이 동천(東天)에서 빛나는 때 싯달타는 확연히 대오(大悟)했다. 그 때 나이 35세. 마침내 부처가 된 것이다. 각자(覺者), 세존(世尊), 인천(人天)의 스승이 태어난 것이다.
정각을 이룬 부처님은 파라나사국(派羅奈斯國)의 녹야원에 가서 교진여(橋陳如)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고 왕사성에 이르는 도중에 가섭 3형제에게도 법을 설하셨다. 왕사성에서는 마하타 국왕을 비롯해 빈파사라(頻婆沙羅) 및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등을 제도했다.
성도후 3년 고향인 카필라 왕국에 들어간 부처님은 부왕 정반왕과 아난(阿難) 난타(難陀) 라훌라(羅喉羅)등 친족들을 정법으로 이끌었다. 이후 부처님은 항하의 남북, 즉 마갈타국과 코살라국, 비사리국 사이를 왕래하면서 세수 여든에 이르기까지 전법도생(傳法度生)에 진력하셨다.
부처님의 열반지는 쿠시나가라. 부처님은 쿠시나가라 성문 밖 발제하 기슭의 사라수(沙羅樹)아래에 누워 마지막으로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또한 마지막 제자로 귀의한 수밧다(Subhadda)에게 법을 설하신 후 최후의 유계(遺誡)를 내리셨다. 그리곤 마침내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고 발 위에 발을 포갠 자세로 선정에 든 채 열반했다. 2월 15일 야반이었다.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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