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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상(空思想)

아산 보문사 2016. 4. 25. 10:19

공사상(空思想)

 

공사상(空思想)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입니다.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불변 하는 자성(自性)이 없습니다.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며,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위대한 진리입니다.

 

불교를 말할 때 그 근본교리로서 주로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을 말합니다. 삼법인이란 일체개고(一切皆苦),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이며, 여기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더하여 삼법인이라고도 합니다. 이 삼법인은 불교 교리의 근본적 특징이므로 이것과 합치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괴로움[一切皆苦]'이라 하는 것은 '모든 현상계가 무상[諸行無常]'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무상이 아닐 것 같으면 괴로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상이란 변()한다. 라는 의미이며, 변하나다는 것은 고정성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변천하는 까닭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존재에 변하지 않는 그 어떤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諸法無我]입니다. 모든 존재에 실체가 없는 것을 알아서 그로부터 일체의 집착과 번뇌를 여의게 되면 적정한 열반의 법열이 넘치는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나가게 됩니다.

 

삼법인에 대하여 부연해서 설명 드리면 제행무상인현상계의 모든 물질은 머물지 않고 늘 변함, 제법무안인환경에 따라서 시시각각 내가 변함, 열반적정인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 고요한 상태에 머뭄.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현상은 영원히 머물지 않으며 찰라 찰라에 변합니다. , 인연법에 의하여 생주이멸(生住離滅)하는데 우리 범부는 그 이치를 모르고 나와 내 것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물질 본래의 실체(참모습)를 관하고 내 자신이 만든 격식을 내려놓았을 때 세상의 참된 이치가 보이게 됩니다. 모든 존재는 물거품이나 번갯불처럼 찰라에 생기고 없어집니다. 우리의 몸과 주변의 상황도 이러한 것인데 집착과 아집으로 괜한 고통을 만들고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사상이란 모든 현존하는 물질과 현상은 잠시 머물렀다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이니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려 마음의 고요함을 느끼고 참된 성품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늘은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에는 구름이 머물고 바람이 지나가며 비를 뿌린답니다. 땅에는 많은 동식물이 공존하며 하늘과 땅의 은혜를 누리며 짧은 삶을 누린답니다. 불교에서의 비어있음을 뜻하는 무심(無心)이란 가득 차 있는 유심(有心), 다심(多心), 대심(大心)을 의미합니다. 내마음자리가 깨끗하게 비워져야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공이란? 불교사상 가운데 설명 드리기 어렵고 또한 이해하기가 어려운 최상승 진리입니다. 지혜를 구족하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더 설명 드리면 공이란 범어로 수냐(Sunya)라고 하는데, 그 뜻은 '텅 비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의 본래 의미는 일체법(一切法)은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거기에 아체(我體), 본제(本體), 실체(實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고 제법개동(諸法皆空),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체 현상계를 공한 것으로 관찰하는 것을 공관이라고 하여 앞에서 잠깐 언급한바 있습니다. 공은 허무가 아닙니다. 공을 관찰하는 것은 그대로 진리에 대한 발견입니다. 그래서 진공(眞空)은 그대로가 묘유(妙有)라고 해서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 진정한 공은 묘하게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공에 대한 가르침은 불교경전 전반에 거쳐 설해진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특히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에서 그 이론이 체계화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한 마디로 공한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바로 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이란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살상(참모습)을 철저히 규명 짓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사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텅 빈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실상이 텅 빈 것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실상을 실상대로 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끝없는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온갖 괴로움을 뿌리 채 뽑아 버리기 위해서는 공관으로 현상계를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 할 때, 분명히 있는 것인데 왜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모든 것을 공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실체이든 하나로 고정된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현상계의 모든 것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떤 고정불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의 입장은 무엇이든지 되고자 한다면 그 의지대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