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스님 법어/♣ 禪을 즐겨라

禪을 즐겨라 - 선은 전진과 창조 가르쳐

아산 보문사 2016. 4. 2. 14:19

선은 전진과 창조 가르쳐

 

禪을 즐겨라 제1편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선에 대한 인식(2)

 

선은 남녀노소 누구나 필요한 것이지만
발전과 성장단계 젊은이에게 특히 필요
인생전반에 영향, 후회 없는 인생 창조

 

 

우리들의 삶은 육체와 정신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의 활동을 돕기 위해 우리는 식사를 해야 하고 정신적 성장을 위해선 독서 등 학습을 간단없이 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불자들은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꿰뚫어 보는 노력을 동반한다.

일단 자기 자신의 개성을 확인하고 ‘견성’한다면 인생의 존엄함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도록 항상 노력한다. 이를 불교에선 정진(精進)이라고 한다.

정진은 자신의 인생을 보다 바르게, 보다 착하게, 보다 아름답게, 보다 높게, 보다 깊게, 보다 넓게, 보다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보살의 길이다. 보살의 길을 통해 우리는 ‘견성’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화를 구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견성’은 인생에서 맛봐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다.

3. 선은 젊은 시절 익혀야 한다

선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발전과 성장의 단계에 있는 젊은이에게 특히 필요하다. 선은 젊은 시절 자신의 일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선은 사업뿐만 아니라 연애를 완성시키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사업과 연애는 젊은 시절 경험한 노하우로 인생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해 ‘선’의 힘을 배경으로 했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을 창조하게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대의 젊은이에게 ‘종교’를 앞세워 무엇인가를 강요하면 이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이지성(理知性)이 높고 감정(感情)이 민감한 현대의 젊은이에게 종교는 때에 따라선 억압 또는 구속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에 한해서는 어떠한 이지라도, 어떠한 감정이라도 충돌과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젊은이의 자성(資性)을 보다 견고히 성장케 하고 발전케 하여 완성으로 이끌어 주는 힘을 보여준다. 선은 그래서 마력이라고도 불린다.

‘선’은 자신의 본체(本體)와 본성(本性)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선은 인간의 윤리처럼 모든 본능을, 모든 지성과 감정을, 모든 번뇌망상(煩惱妄想)을 털끝만큼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하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이끌어 간다. 이것이 바로 선의 강점이자 특징이다. 인간 자체를 죄의 근원이라 보고 존엄성을 간과하기 쉬운 특정종교와는 달리 선은 우리 자신을 더할 나위 없는 귀중한 보배로 본다. 인간이 죄의 근원이라면 부정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보배로 여겼을 경우 부정의 색깔은 지워진다. 빛이 바래지 않게끔 잘 다듬기만 하면 된다.

  
▲ 삽화=강병호 화백


인간은 본래 식(食)과 색(色)의 덩어리다. 식욕은 개체를 온전하게 보호하고 유지하는 본능이며 성욕은 종족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본능인 것이다. 시험 삼아 하루 이틀 단식을 해보면 식욕의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성욕 또한 본능에 충실하다. 남자가 여자를 보게 되면 먼저 눈이 기뻐한다. 여자의 체취는 코를 기쁘게 하고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귀가 기뻐한다. 여자를 핥으면 혀가 기뻐할 것이며 여자에 닿으면 피부가 기뻐한다. 여자와 대화하면 마음이 기뻐한다. 여자 쪽에서도 이와 똑같다. 성적 매력의 뿌리는 매우 깊은 것이다. 이것은 생물의 숙명으로서 그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도리를 벗어난 것으로 큰 잘못이다. 오직 어떻게 식욕을 해결하는가 또는 어떻게 성욕을 처리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이 달리 나타날 뿐이다. 이 성욕과 식욕이라는 근본적인 본능에서 양지양능(良知良能)이나 도덕적 정조도 생기는 것이며 번뇌망상, 오욕칠정(五欲七情)이 생겨난다.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의 성능을 완전히 발달, 발로(發露)시켜서 적절한 조화를 유지하게 한다면 모든 본능, 모든 번뇌망상은 자기 자신을 완성체로 만들어나가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선’은 인생의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한다. 소극적으로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본다. 도취하지 않고 창조한다. 정체하지 않고 전진한다. 그러므로 ‘선’은 특별히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이다.

‘선’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에는 신앙의 대상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선’에는 신앙해야 할 대상이 없다. 굳이 말한다면 ‘행동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는 말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신앙의 대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 이외에 초인간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선만이 갖고 있는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선이 지식인은 물론이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존엄만을 믿는다. 신불(神佛)을 받들어 모시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받들어 섬긴다. 자기 자신 이외에 신앙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선에선 미신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존재와 존엄을 믿고 겸허한 태도로 자신을 닦는 것이 젊은이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젊은 계층은 사회 구성원으로 귀중한 존재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선을 경험해 보라고 권장한다. 민족의 흥륭과 쇠망은 젊은이들의 현재 삶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상할 정도로 귀에 익은 말이지만 동서고금의 변천을 살펴보면 결코 헛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젊은이들이 기개가 넘치고 건강하면 나라가 흥했고 그렇지 못할 때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선은 젊은이들에게 기개를 선사하는 힘이다.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