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 법문

참회(懺悔)

아산 보문사 2017. 5. 31. 16:04


 

 

 

참회(懺悔)

 

()은 산스크리트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청하는 것이며, ()는 크사마(ksama)의 의역으로 후회하는 것을 뜻합니다. 참회는 과거로부터 지어 온 잘못은 물론 현재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잘못과 허물을 뉘우치고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부처님 앞에 맹세하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또한 상대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용서를 비는 것도 참회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참회를 매우 종요하게 생각합니다. 불교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계율(戒律)이 있습니다. 계율은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제되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다스리는 자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참회하고 나서 자신의 원을 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내밀한 마음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용서를 청하는 겸허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을 향하는 거짓 없는 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정으로 참회 드리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참회는 남이 강제로 시킨다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참된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욕이며 갈망이라고 합니다.

 

참회의 의식에는 포살과 자자가 있고, 그 방법으로는 사참과 이참이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이 죄를 범하였을 때 대중 전부를 모아 참회하고 죄를 뉘우쳐 바른 수행의 길로 이끄는 것이었으며, 이 참회의 의식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참회는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는 뜻으로 참회의 방법에는 3(3)이 있습니다. 상품(上品)참회는 온몸의 털구멍과 눈에서 피가 나도록 잘못을 비는 것이고, 중품(中品)참회는 온몸에서 땀이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품(下品)참회는 온몸에서 열이 나고 눈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참회는 뉘우침과 반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의 진정한 뜻은 다시는 그 같은 허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쳤다 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그런 잘못과 실수를 저지른다면 진정으로 참회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회에는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있습니다. 사참은 3(3)참회와 같이 몸으로 잘못했음을 뉘우치는 것이고, 이참은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이성적으로 궁구해서 근원적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으로 마음오로 다짐해야 할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참회할 대상을 알고 둘째. 죄를 지은 것을 강하게 후회하고

셋째.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넷째. 절을 하거나 경전을 읽는 등 치료제가 되는 행을 행하여야 한다.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상태에서 참회해야만 진정으로 참회가 되고 업장이 소멸 된다고 하는데 이를 사대치력(四大治力) : 네 가지 치료하는(다스리는 힘)이라 합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많은 죄악과 허물을 짓게 됩니다. 이러한 죄악과 허물은 대부분 세속적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생겨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참회해야 할까요? 참된 참회는 자기 성품 속에서 죄의 반연을 없애는 것이라 했습니다. 죄의 반연이란 삼독(三毒)의 나쁜 인연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삼독(三毒)은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까요? 육조단경에서 참()이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지은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란 지금부터 미래에 이르도록 지을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참()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침이니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뉘우쳐서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란 이후에 짓기 쉬운 허물을 조심하여 다음부터 있을 모든 죄를 미리 깨닫고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을 합하여 참회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최회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앞으로는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독(三毒)의 잘못을 알고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탐((() 삼독(三毒). 이 세 가지를 나누어서 한 가지씩 씻어내면 됩니다. 그 요령은 108배를 하되 부처님이 실제로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한 번의 절을 할 때마다 한 가지씩 참회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선 탐욕(貪慾)과 관련된 상념들을 한 가지씩 떠올려서 충분히 확인하고 스스로의 성품에 되뇌이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욕심을 내었습니다. 잘못되었습니다.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짓지 않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욕심들을 참회해 나가면서 지금 이 순간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보다 근원적인 욕심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어쨌든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 나가면 됩니다.

 

다음은 진(). 성냄(瞋怒)에 관해서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하게 화를 내었습니다. 잘못되었습니다.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짓지 않겠습니다.”하고 반성해 나가는 것인데 시기질투하고 남을 흉보는 것도 일종의 성냄이지요. 이 역시 참회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명심해야할 것은 무조건적인 참회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건부 참회가 되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원인이야 어쨌든 자신의 성품 가운데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는 것은 무언가 자취를 남기는 것이므로 언젠가는 그것을 확인하여 없애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치()인데 이를 무지(無知) 즉 어리석음에 관해서 참회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것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한껏 못났다고 생각해야 참회가 됩니다. 우리의 본성이야 잘나고 못나고를 초월해 있는 것이지만 다만 분별의식이 못났다는 것입니다. 꾀죄죄한 자신을 잘났다고 착각하여 남과 비교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 이것이 정말 못난 것이라 하지요. 또한 인과를 믿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베푼 만큼 돌아오고 지은 만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확신하지 않는 까닭에 은덕은 조금 베풀고 대가를 많이 받지 못해서 안달하고 허물은 많이 짓고서 과보를 조금 받으려 전전긍긍합니다.

 

옛말에 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베풀면 반드시 그 일이 드러나서 갚음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 선인선과(善因善果)라 평소 선업(善業)을 많이 쌓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의 하나가 부끄러움을 알고 참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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