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스님 법어/♣ 禪을 즐겨라

禪을 즐겨라 - 유엄, 마조에 계오하고 석두 법 이어

아산 보문사 2016. 11. 3. 15:48

유엄, 마조에 계오하고 석두 법 이어

선을 즐겨라 27-제2편 선승과 공안

 

 

32. 오봉상관(五峰常觀 ?∼? 南嶽下)

 
깨달음 경계마저 초탈

서주(瑞州)의 오봉상관선사는 법을 백장회해선사로부터 이었다.
오봉 선사에 대한 자료는 《전등록》제9권과 《연등회요》제7권 균주 오봉산 ‘상관선사전’에 몇 편의 선문답을 전하고 있을 뿐 그의 생애와 생몰연대에 대해선 전혀 알 수가 없다. 《전등록》에 어떤 사람이 오봉상관에게 “어떤 것이 오봉의 경지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오봉 선사는 “험준하다”고 대답했다. 또 “어떤 것이 (깨달음) 경계의 사람인가?”고 물으니 “막혔다”고 답했다. 이같은 오봉 선사의 답은 산이 험준하여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니 깨달음의 경계마저 초탈하여 자유자재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오봉화상병각(五峰和尙倂却) [백장병각인후 百丈倂却咽喉]

백장스님이 이번에는 오봉에게 물었다. “목도 입도 쓰지 않고 말할 수 있느냐?” 오봉은 “스님께서 먼저 목도 입도 없애 보시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백장이 “아무도 없는 데에 가서 네가 오기를 멀리 바라보겠네.”라고 말하였다. 《벽암록》 제71

33. 방거사(龐居士 ?∼808 南嶽下)

 '진단의 유마'라 불려

방거사(龐居士)는 양양(襄陽) 사람으로 성은 방(龐)씨이고 이름은 온(蘊), 자는 도현(道玄)이라고 한다. 대대로 선비 집안의 자식이다. 당(唐) 정원(貞元) 초에 진체(眞諦)를 구하여 불법에 귀의했다. 처음에는 석두 희천선사를 뵙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거사가 “만법(萬法)과 벗 아닌 자는 그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데에 대해서 석두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거사는 크게 깨달은 데가 있었다. 뒤에 마조대사에게로 가서 또 같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만법과 벗 아닌 자는 그 누구입니까?” 이에 마조대사가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게 되면 말해주지.”라고 대답하였다. 방거사는 이 한 마디에 확연(廓然)히 대오(大悟)하였다. 마조에게 머물기를 2년, 이윽고 그 법을 받았다. 그 뒤 기봉(機鋒)이 대단히 민첩하여 진단(震旦)의 유마(維摩)라고 일컬어 졌다. 그의 딸인 영조(靈照) 또한 참선(參禪)하였는데 거사가 입적할 무렵에 영조에게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은 낮이 밤보다는 좋을 것이므로 밖에 나가 해 돋는 것을 보고 알리라고 하였다. 영조는 시키는대로 해 돋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알리고 동시에 일식(日蝕)임을 말했다. 거사가 일식을 보고자 자리에서 내려오자 영조가 곧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가 합장하고 좌망(坐忘)하였다. 이를 본 거사는 웃으면서 나의 딸이 봉(鋒)이 재빠르다고 하고, 거사는 그 후 일주일을 더 살고 입적했다. 거사는 “오직 원컨대 일체의 소유(所有)를 없애고(空), 모든 소무(所無)를 채우려 하지 마라.”는 게를 남겼다. 어록(語錄)이 3권 전하고 있다.

  
▲ 삽화=강병호 화백


방거사호설편편(龐居士好雪片片)

방거사가 약산(藥山)의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약산이 열 명의 선객을 시켜 산문까지 전송케 하였다. 거사가 하늘의 눈을 가리키며, “좋군요. 저 눈송이 펄펄 내리니, 별개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전(全)이란 선객이 “어디로 내립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거사는 다짜고짜 뺨을 후려쳤다. 전 선객이 “거사님. 이거 너무하시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대들자, 거사는 “당신이 선객이라고 거들먹거린다면 염라대왕에게 직행이다.”라고 하였다. 그래도 전 선객이 “거사라면 무어라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거사는 한 번 더 세게 후려치고 나서, “이 눈 뜬 장님 같고 벙어리 같은 녀석아. 무슨 쓸개 빠진 수작이냐"고 소리쳤다. 《벽암록 》 제42

방거사대매(龐居士大梅)

방거사가 대매(大梅)법상화상(法常和尙)에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대매(大梅)라 들었는데 매실이 제대로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모르겠소.” 그러자 대매화상이 “아무데나 주둥이를 놀릴래.”라고 하였다. 이에 거사는 “무엇이든 먹지요.”라고 하였다. 대매화상이 손을 뻗으며 “나에게 매실 씨를 돌려다오.”라고 말하자, 거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4.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靑原下)

예주 약산(藥山)의 유엄선사(惟儼禪師)는 항주 한씨(韓氏)의 아들로 나이 17세 때 조양서산(朝陽西山)의 혜조선사(慧照禪師)문하에 출가해 형악(衡嶽)의 희조율사(希操律師)에게서 수계했다. 널리 경륜을 배우고 계율을 엄수하며 정진하고 있던 어느날, 하루는 슬퍼하며 말하길 “대장부가 오직 법을 떠나서 자정(自淨)해야 하리. 누가 능히 자잘한 일을 일이라 하겠는가.”하곤 결연히 뜻을 세워 석두희천 선사 곁으로 갔다. 그는 석두선사를 배알한 자리에서 청해 말했다.
“3승12분교(三乘十二分敎)는 대충 알게 되었으나 남방의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의 종지는 아직 밝게 알지 못하였나이다. 화상께서는 자비한 마음으로 직지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석두화상은 “여기는 인연이 없으니까 마조대사 곁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천거하니 선사는 곧 마조대사를 찾아갔다. 유엄을 맞은 마조대사는 말했다.
“내 어느 때는 그로 하여금 양미순목(揚眉瞬目 양미는 눈썹 끝을 치켜 올리는 것, 순목은 눈을 깜박이는 것을 말함)케 하고 어느 때는 양미순목케 하지 않는다. 또 어느 때는 양미순목하는 자가 좋고, 어느 때는 양미순목하는 자가 좋지 않다. 그런데 그대는 어떠한가?”
유엄은 마조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문득 계오(契悟)하여 대사에게 예배했다. 그러나 마조대사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그대 무슨 도리를 보았길래 예배하는가?”라고 다그쳐 물었다. 유엄이 말하길 “제가 석두 곁에 있을 때는 모기가 철우(鐵牛)를 깨무는 것과 같았습니다.”하니 마조대사가 “이미 그러하다면 좋다. 스스로 호지(護持)하라.”고 말하곤 비로소 입실을 허락했다.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