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스님 법어/♣ 禪을 즐겨라

禪을 즐겨라 - 등불에 태양이 빛을 잃겠는가?

아산 보문사 2016. 11. 3. 15:44

등불에 태양이 빛을 잃겠는가?

선을 즐겨라 25-제2편 선승과 공안

 

 

 

27. 반산보적(盤山寶積 ?∼? 南嶽下)

유주(幽州) 반산(盤山)의 보적선사(寶積禪師)는 마조도일선사의 법사(法嗣)이다. 스님이 하루는 시장을 걷다가 마침 한 손님이 푸줏간 앞에서 돼지고기를 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손님이 푸줏간 주인에게 좋은 곳을 달라고 주문하자 주인은 “우리 가게에 있는 고기는 모두 좋은 것 뿐이요. 이 이상 더 좋은 것은 없소.”라고 하였다. 이 문답을 듣고 스님은 마음으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

하루는 문 밖에 장례 행렬이 지나 가고 있었다. 경(經)을 외우면서 가는 장례 행렬 한 가운데에서는 망자(亡者)를 보내는 효자가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선사는 깊이 감동했다. 스님의 전기에는 “불현 듯 심신이 요동쳤다.”고 적고 있다. 스님은 그 경험을 곧 마조대사에게 말씀드렸다. 마조대사는 스님이 깨달음에 든 것을 허락하였다.

선사가 머무는 산사의 뒷켠에서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그러자 선사는 대답 대신에 꾸짖었다. 스님이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선사는 “모르면 돌아가면 될 것 아니냐.”고 하였다. 후에 선사는 당(堂)에 올라가 대중들에 말씀하셨다. “마음과 달이 두루 어울리니 빛이 만상을 삼키는도다. 빛이 경계를 비추는 것이 아니요, 경계 또한 있는 것이 아니다. 빛과 경계를 함께 여의니 이 또한 무엇인가. 선덕(禪德)으로 비유하자면 칼을 휘두르나 헛 칼질을 하는 것과 같으니 미치든 미치지 않든 따지지 마라. 허공 중엔 바퀴자국이 없으니 칼날 또한 이지러질 일이 없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깨닫는다면 마음이 온전히 안다고 여기는 게 없으리니 마음이 온전하면 곧 부처요 온전한 부처가 곧 사람이다. 사람과 부처가 다름이 없어야 비로소 도라 하느니라.”

선사가 순세(順世)하시게 되자, “나의 진영(眞影)을 그렸는가?”라고 물었다. 한 스님이 그린 선사의 진영을 보여주자 선사는 좋다고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화화상(普化和尙)이 “제가 잘 그려 두었습니다.”라고 하자 선사는 “그렇다면 내어 보여라.”라고 하였다. 보화화상이 갑자기 공중회전을 하면서 나가자 이를 본 선사가 “저 사람 앞으로 광인될 일은 없겠구나. 잘 했다.”라고 칭찬하고 곧 천화(遷化)하셨다. 시호는 의적대사(凝寂大師)라 한다.

  
▲ 삽화=강병호 화백


28. 염관제안(鹽官齊安 ?∼842 南嶽下)

 "선사를 정중히 모시라 했거늘
 어찌 토우를 데리고 왔느냐?"

항주(抗州) 염관(鹽官) 해창원(海昌院)의 제안국사(齊安國師)는 해문군(海門郡) 이(李)씨 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신묘한 빛이 온 방을 밝혔는데, 뒤에 한 스님이 나타나 “무승당(無勝幢)을 세워 불일(佛日)을 두루 밝히는 자는 바로 이 아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성해서 같은 고을의 운종선사(雲琮禪師)를 따라 출가하여 대계(大戒)를 받았다. 스님은 마조 도일선사가 공공산에서 포교하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마조는 스님을 보자마자 한 눈에 범상치 않은 그릇임을 알고 문하에 들 것을 허락하고 남몰래 정법(正法)을 가르쳤다. 이렇게 해서 스님은 마조대사의 법을 이어 받아 출세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강승(講僧)이 와서 스님을 뵈었다. 스님이 물었다. “좌주(座主-강승의 별칭)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가?” 그러자 강승이 대답하기를 “금강경을 강의합니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경에는 몇 가지의 법계가 있는가?”라고 물으니 강승은 “넓게 말하면 중중무진(重重無盡)이오 약설하면 4종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스님이 불자(拂子)를 곧추세우면서 “이것은 어느 법계에 해당하는가?”라고 물으니 강승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깊이 탄식할 따름이었다. 여기에서 스님은 “생각하여 알고, 헤아려서 아는 것은 귀신이 살아 다니는 것과 같다. 벌건 대낮에 등불 하나를 피운다고 태양이 빛을 잃겠는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하루는 법공(法空)이라고 하는 선사(禪師)가 찾아 와서 경서 중의 여러 의미를 물었다. 스님은 하나하나 대답해 준 뒤에, “나는 이곳의 주인이 될 만한 자격이 없으나 그대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다만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일단 하산하고 내일 다시 오시오.”라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스님은 사미(沙彌)로 하여금 법공선사를 맞이하게 하였다. 법공선사가 사미의 인도로 도착하자 그 때 스님은 사미를 돌아보며 크게 꾸짖기를 “이 놈아, 법공선사를 정중히 모시라 했거늘 어찌하여 이런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인형)를 데리고 왔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법공선사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였다.

스님은 임종할 때가 되어 좌선한 채로 입적하셨다. 시호는 오공선사(悟空禪師)라 한다.

염관서우선자(鹽官犀牛扇子)
스님이 하루는 시자를 불러 무소뿔 부채를 가져오라고 하자, 시자가 “그 부채는 이미 찢어졌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부채가 찢어졌다면 무소라도 끌고 오너라.”라고 하였다. 시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 투자화상(投子和尙)이 “무소를 끌고 오기는 어렵지 않으나 뿔이 온전치 못할 것이요.”라 하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은 “노스님께 돌려드리고 싶지만 이미 없어졌으니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한편 자복화상(資福和尙)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속에 우(牛)라고 써 넣고, 마지막으로 보복화상(保福和尙)은 “노스님께서 연세가 많아 노망이 난 것 같으니 다른 시자를 불러 오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였다. 《벽암록》 제91 《종용록》 제25

-(재)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