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찬의 '신심명' 불후의 명작
선을 즐겨라 ⑯-제2편 선승과 공안
14. 감지승찬(鑑智僧璨 ?∼606)
감지 승찬선사는 2조 혜가의 법을 전수받은 중국 선불교의 제3조다. 태어난 곳과 가계(家系)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산수(山水)를 좋아 해 서주 환공산(晥空山)에 숨어 지냈다. 후주의 무제가 불법을 파멸시키려 하자 사공산(司公山)등으로 왕래하면서 일정한 주소를 두지 않았다. 수나라 개황 13년 도신(道信)을 얻어 법을 전하고 수양제 때 대법회를 주관, 심요(心要)의 법문을 마치고 합장한 채 입적했다. 당의 현종황제가 감지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저술로는 《신심명》이 전해지는데 선가에 널리 읽혔다.
신심명(信心銘)
도에 이르기 어려울 것 없고 오직 간택(揀擇)을 싫어한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리라. 털끝만큼이라도 틀림이 있다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도가 현전(現前)하길 바란다면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마음의 병이 된다. 현묘한 뜻을 알지 못하고 헛되이 생각만 고요히 둥근 것은 태허와 같아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소치에 여여하지 못하다.
세간의 인연도 따르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저절로 사라져 스스로 다하리라. 동(動)을 멈추고 지(止)로 돌아가면 지가 다시 큰 동이 되나니 그저 양변에 머물러 있으면 오히려 한 가지임을 알게 된다. 한 가지에 통하지 않으면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에 따르면 공을 등지게 된다.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하게 되고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조(照)를 따르면 종(宗)을 잃는다. 잠깐 사이 돌이켜 비춰보면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앞의 공함이 전변(轉變)함은 모두 망견 때문이니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쉬도록 하라.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좇아가 찾지 말라. 작은 것으로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는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을 탓할 일 없다. 탓할 일 없으면 법도 없고 나지 않으면 마음이랄 것도 없다.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가라앉으므로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양단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하나의 공임을 알라.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품고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으랴. 대도는 넓어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니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진다. 집착하면 도(度)를 잃게 되나니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간다. 이를 풀어놓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다.
▲ 삽화=강병호 화백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로서 번뇌가 끊어지고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다.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침함을 쓸 것인가. 일승(一乘)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六塵)을 미워하지 말라. 육진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정각과 같다. 지자(智者)는 하는 일 없고 우인(愚人)은 스스로를 묶는다.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경망스럽게 스스로 애착한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쓰면 어찌 크게 그릇됨이 있으랴.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나니 일체의 두 견해는 참으로 짐작(斟酌)하기 때문이다.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무엇 때문에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라.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같다. 한결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 올이(兀爾)하게 인연을 잊는다. 만법을 똑같이 본다면 돌아감이 자연스럽다. 그 까닭을 없이하면 견주어 비교할 바가 없다.
움직임을 멈추면 움직임이 없고 그침을 움직이려 하나 그침이 없다.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하나인들 어찌 있을 건가. 구경하고 궁극하여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하나니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게 된다.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고루 펼쳐지며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기억할 바 아무 것도 없다.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다. 사량(思量)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식정(識情)으론 헤아리기 어렵다.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 재빨리 상응코자 한다면 오직 둘 아님(不二)을 말하라. 둘 아님은 모두 같아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宗)에 들어온다. 종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만년이요, 있고 없고도 없고 시방이 바로 눈 앞이다.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가 모두 끊어지고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다.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킬 것을 마땅히 지켜라.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무엇 때문에 끝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리.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지금 오고 갈 때가 아니다.
15. 대의도신(大醫道信 580∼651)
중국선불교 제4조 대의도신
만민고통 구제 후 파두산 주석
중국 선불교의 제4조로 기주 광제현(廣濟縣)사람이며 속성은 사마(司馬)씨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고 공종(空宗)의 여러 해탈문(解脫門)을 흠모했다고 한다. 3조 승찬선사의 법을 이었는데 법맥을 전수받은 후에도 수면하지 않기를 60년이나 했다. 수나라 대업 13년에 대중을 이끌고 길주에 이르러 만민의 고통을 구제하고 당 무덕 7년에 기주로 돌아와서 파두산(破頭山)에서 살았다. 그러자 학도들이 끊이지 않고 운집했다. 어느날 황매현(黃梅縣)으로 가는 도중에 한 어린이를 만났다. 그가 바로 훗날의 5조 홍인선사(弘忍禪師)다. 도신은 그에게 법을 전수했다. 당 정관 17년 경사(京師)에 오르라는 태조의 명이 있었으나 한사코 나아가지 않았다. 고종 영휘 2년에 시적했으니 세수 72세였다. 다음해 4월 8일 선사의 유해가 안치된 탑의 문이 저절로 열려 살펴보니 마치 살아있는 듯 성성해 그 뒤로 탑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다. 대종황제가 대의선사(大醫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선학원 총무이사·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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