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 법문

해탈(解脫) 열반(涅槃)이란 -송운 큰스님-

아산 보문사 2019. 3. 1. 18:25

 

 

해탈(解脫) 열반(涅槃)이란

 

불교를 믿는 불교도(사부대중)를 불자라 합니다. 그러면 불자들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불교를 믿는 근본적인 이유, 본질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바로 그 부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요, 해탈을 얻는 것입니다.

 

열반의 의미

열반(涅槃)은 니르바나(nirvana)라는 인도 말을 번역한 말입니다. 의미가 아니라 소리만 빌려 번역한 것이며, 굳이 번역한다면 적멸 또는 해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르바나의 의미는 불어서 끄다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끈다는 것, 즉 마음의 번뇌가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수행을 통해 도달한 궁극적 경지를 불교에서는 해탈이나 열반이라는 말로 부릅니다.

해탈(解脫, vimoksa, vimukti)은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자유 등을 의미합니다.

열반(涅槃, nirvana)'불어 끈다(吹滅)'는 뜻으로서 번뇌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열반이란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잡아함경>에 말씀 하시기를

열반 이란 탐욕이 영원히 사라진 상태, 성냄과 어리석음 그리고 일체의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르바나(열반)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 사용되어 왔으나 한결같이 전제되고 있는 것은 최고 최후의 완성이라는 의미 입니다. 삶과 죽음에서도 자유롭고 마음과 몸에서도 자유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생사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과 물질에 걸리지 않는 대자유의 상태가 바로 열반인 것입니다

 

열반(涅槃)이란 무엇이냐, 해탈이란 무엇이냐,

열반이란 탐, , (貪瞋痴)가 사라진 경지, 불안과 고뇌가 없는 평안과 자유의 경지, 법열(法悅)과 환희로 가득한 자유무애(自由無碍)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열반을 해탈이라고도 합니다. 해탈이란 문자 그대로 속박에서 풀리고(),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불안이나 번뇌에서 벗어나서 기쁨과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열반에 도달 할 수 있고 해탈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탐, , 치를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 탐욕, ()은 분노, ()는 어리석음 입니다. 열반에 들지 못하는 그 원인은 무명(無明)과 아집과 욕심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탐, , (貪瞋痴 )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함경에 말씀하시기를 , , 치를 없애라, 그러면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온다.” 인간은 탐욕의 노예, 분노와 시기심의 노예, 어리석음과 무명(無明)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남을 괴롭히게 되며, 결국 탐, , 치는 우리 마음을 미혹과 미망으로 만들어 불행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불교에서는 탐, , 치를 삼독(三毒)이라고도 하고 삼화(三火)라고도 합니다. 왜 탐, , 치가 생기는가, 무명과 집착 때문입니다. “무명에서 벗어나라 집착에서 벗어나라 무명은 어리석은 소치요 집착은 맹목적 욕심 이니라무명과 집착이 없어질 때 우리는 탐, , 치를 극복 할 수 있습니다. , , 치라는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 그것이 열반이요. 해탈 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백팔번뇌(百八煩惱)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번뇌가 있는 동안, 우리는 평안과 자유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번뇌의 사슬과 굴레를 끊을 수 있느냐, 그것은 오로지 탐, , 치를 없애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불교는 해탈과 열반을 향해 가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나의 해탈 열반 뿐 아니라 일체중생을 해탈 열반으로 이끄는 종교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불교인의 목적이자, 우리들 모든 존재의 삶의 목적이 드러나 있습니다. 많은 수행자 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했던 그 이유는 바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기 쉬워진다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일체 중생, 많은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고 평화로움으로 이끌고 자비로 이끄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근본적인 목적은, 내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겠다, 불교를 통해서 내 마음 좀 편안해 보겠다, 어떻게든 내 삶이 좀 아름다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런 목적으로만 절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목적은 불교를 공부함으로써 나의 행복도 행복이지만 더 나아가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내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러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자비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곧 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 것입니다. 바로 이 자각,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지혜이고, 이러한 동체대비의 지혜가 생겨나면 저절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혜가 곧 자비이고, 깨달음이 곧 사랑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모든 목적이 자비와 사랑에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얼마만큼 자비로워지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되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의 목적은 여기에 있음을 우리 불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