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機用이 천연 그대로
선을 즐겨라 22-제2편 선승과 공안
24.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靑原下)
석두희천에게 머리깎고
마조도일에게 참방구법
추위 녹이고자 목불태워
"사리 안나오는데 뭔 타박"
단하천연 선사는 당(唐)나라 때 사람으로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선사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마조도일의 법제자다. 유가(儒家)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유학을 배웠다.
단하천연 선사는 처음에 유학을 배워 수도인 장안(長安)에 나가 사관 시험을 치르고자 어느 여관에 투숙하였다. 그날 밤에 흰 빛이 방에 가득한 꿈을 꾸었다. 점쟁이한테 가 점을 치게 하였더니 “이 꿈은 당신이 아공법공(我空法空)의 진공(眞空)을 깨닫고 불도(佛道)에 들 상서로운 꿈이다.”고 하였다. 때마침 한 선승이 단하에게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자 문관 시험을 치르고자 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선승이 “관리를 뽑는 것[選官]이 어찌 부처를 뽑는 것[選佛]과 같으랴. 불도에 급제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단하가 “부처를 뽑는 데는 어디가 좋습니까?”라고 묻자 선승은 “지금 강서(江西)에 마조대사가 학자들을 지도하고 계시니 그곳이야말로 선불(選佛)의 도량(道場)이요. 당장이라도 그리로 가는 것이 좋겠소.”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선승의 선불(選佛) 한 마디에 단하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하여 곧 강서로 가서 마조대사를 상견하고 양 손으로 벼슬이 없는 자가 쓰는 두건(頭巾)을 바쳤다. 마조는 단하의 모습을 흘낏 보고 이 사람이 법기(法器)라 생각하고 자신은 단하의 스승이 아니니 남악(南嶽)의 석두선사(石頭禪師)에게 가라고 가르쳤다. 단하는 곧장 석두선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간의 인연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석두선사는 “그렇다면 방앗간에 내려가 있거라.”고 명하였다. 단하는 사례하고 방앗간에 내려와 삼년여 동안 일을 하였다.
어느 날 석두선사가 대중들에게 불전(佛殿) 앞의 풀을 베라고 명하였다. 대중들이 모두 대청소를 시작하였는데 단하는 풀베기를 할 생각은 안하고 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머리를 깨끗하게 하여 석두선사의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다렸다. 석두선사는 단하의 마음을 알고 그대 머리의 풀도 베어 주겠다는 듯이 웃으며 단하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석두선사는 단하를 향하여 관례대로 계(戒)를 설하고 승려로서의 행(行) 경계하여 말해주었다. 그러나 단하는 그러한 것은 듣지 않아도 좋다는 듯이 귀를 막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길로 곧장 마조대사에게로 갔다. 아직 마조에게 참례하기도 전에 승당(僧堂)에 들어가 문수보살의 상(像)을 끌어내어 그 목에 올라 타서 말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대중들이 크게 놀라 마조에게 알리자 마조대사는 필시 어는 미친 중이려니 생각하고 와 보니 뜻밖에도 예전에 보았던 단하였다. 마조는 단하의 씩씩한 기용(機用)을 보고 불현 듯 “그놈 하는 짓이 아들녀석 그대로구나.”라고 찬탄하였다. 이 말을 듣자마자 보살상에서 뛰어 내려 마조대사에게 예배하고 “스님께서 법호(法號)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는 그 후부터 천연이라고 이름하였다.
▲ 삽화=강병호 화백 |
천연 단하는 그 뒤로 사방을 두루 돌아다녔다. 천태(天台) 화정봉(華頂峰)에 2년을 머물고, 또 여항(余杭) 경산(徑山)으로 가서 국일선사(國一禪師)를 배알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당(唐) 원화(元和) 연간에는 낙경용문(洛京龍門)의 향산(香山)으로 가 복우화상(伏牛和尙)과 우의를 두텁게 했다. 뒤에 혜림사(慧林寺)에 갔을 때는 대단히 추웠다. 추위를 녹이고자 단하는 불전(佛殿)에 있는 목불(木佛)을 끄집어 내와 그것을 뽀개 태워 엉덩이를 녹이고 있었다. 원주(院主)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고 다그치자, 스님은 지팡이로 재를 휘 저으면 “사리(舍利)를 얻고자 한다.”고 천연스럽게 말하였다. 원주가 “목불에 사리가 있을 턱이 있는가.”라고 하자. “사리가 나오지 않는 목불이라면 한 개 더 태워야겠다.”고 하였다.
후에 스님은 남양(南陽)의 혜충국사(慧忠國師)를 뵙고 종지(宗旨)를 더욱 드높이는데 진력했다. 원화(元和) 3년에 스님이 천진교(天津橋) 밑에서 옆으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마침 정공(鄭公)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스님을 깨웠으나 스님은 도통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같이 온 관리가 그 까닭을 물으니, 스님은 “나는 일 없는 중이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정공이 스님을 이인(異人)으로 존경하고 의식을 공양하였기 때문에 졸지에 평판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되었다. 같은 15년 봄에 문인(門人)에게 알려 최후에 끝맺을 땅으로 남양의 단하산으로 결정하고 거기에 암자를 짓고 그곳으로 옮기니 사방에서 찾아 온 학도가 삼백여명에 이르렀다. 당(唐) 목종(穆宗)황제의 장경(長慶)4년 6월말에 입적하니 세수 86세 였다. 시호는 지통선사(智通禪師), 탑(塔)은 묘각(妙覺)이라고 하였다.
단하끽반야미(丹霞喫飯也未) [단하문심처래 丹霞問甚處來]
선사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스님이 대답하기를 “산 아래에서 왔습니다.” 선사가 다시 스님에게 “밥은 먹었는가? 안 먹었는가?”라고 묻자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사는 “너 같은 자에게 음식을 주는 놈이 있더란 말이지. 그 놈은 눈이 달려 있더냐?”하니 그 스님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후에 이 일을 놓고 장경(長慶)이 보복(保福)에게 물었다. “음식을 주어 먹게 함은 은혜를 갚는 것인데 어째 눈이 없다고 했지?” 보복이 대답하기를 “베푸는 자나 받는 자나 둘다 장님이겠지.”라고 하자 장경이 다시 “최선을 다하는데도 오히려 장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보복이 “그럼 내가 장님이란 말인가.”라고 쏘아 붙였다. 《벽암록》 제76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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