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스님 법어/♣ 禪을 즐겨라

禪을 즐겨라 - 마조 문하 뛰어난 세 명 '우뚝'

아산 보문사 2016. 8. 26. 14:58

마조 문하 뛰어난 세 명 '우뚝'

선을 즐겨라 ⑳-제2편 선승과 공안

 

22,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석두 희천선사는 단주(端州) 고요(高要) 사람으로 성은 진(陳)씨이다.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구시원년(久視元年)에 태어났다. 처음에 조계(曹溪)에 가 혜능선사를 배알하고 득도하였다. 혜능이 입적한 후에 청원(靑原)을 뵙고 사사하였다. 천보(天寶) 초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가 절 동쪽 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앉아 있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석두화상이라고 불렀다. 광덕(廣德) 2년에 양단(梁端)으로 내려가 종풍(宗風)을 널리 펼쳤다. 약산유엄(藥山惟儼)에게 법을 전수하고 정원(貞元) 6년 12월에 91세 입적하니 무제대사(無際大師)라 시호가 내려지고 탑을 ‘견성(見性)’이라고 하였다. 《참동계(參同契)》 1편을 저술하였다. 당시에 강서(江西)에는 마조 도일이 있었고, 호남에는 혜충국사가 있어서 각각 종풍을 드날렸다. 천하의 운납(雲衲)이 강서와 호남 사이를 오가니 강서·호남이라고 부르는 명칭은 곧 강서의 도일과 호남의 혜충으로 나온 것이다.

참동계(參同契)
석두대사의 《참동계》에서는 “천축국 대선(大仙)의 마음이 동서 간에 긴밀히 서로 부합한다.”라 하고 있다.

23,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南嶽下)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의 회해선사는 복주(福州) 장락(長樂) 사람으로 성은 왕(王)씨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본존(本尊)의 불상을 보고 무엇이냐고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가 불상이라고 대답하자 회해는 “부처님은 사람을 닮아 조금도 다른 데가 없지 않은가. 나도 커서 부처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예배를 받아야겠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20세 때에 서산 혜조(西山慧照)에 의해 삭발하고 남악(南嶽)의 법조율사(法朝律師)를 따라 법구(法具)를 받고, 노강(盧江)에 가서 대장경(大藏經)을 열람하였다. 그리하여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모두 닦았다.

 현묘한 가르침을 흠모하는
 빈객들 사방에서 몰려들어

마조대사가 강서를 순화(巡化)할 때, 회해는 그 덕풍(德風)에 마음이 기울어 제자가 되어 따랐다. 후에 서당지장(西堂智藏) 남전보원(南泉普願)과 함께 나란히 마조 문하에서 ‘세 명의 뛰어난 대사가 우뚝 서다[三大士角立]’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 삽화=강병호 화백

어느날 백장이 마조대사를 따라 외출하였을 때, 한 무리의 들오리 떼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조: “저것이 무엇인가?”
백장: “들오리입니다.”
마조: “어디로 가는가?”
백장: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마조가 느닷없이 백장의 콧등을 비틀었다. 콧등이 비틀린 백장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가기는 어딜 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이 말에 백장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밖에서 돌아 온 백장이 시자들의 숙소에 들어가 엉엉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동료가 그 이유를 알고 마조에게로 가서 “해형(海兄)이 스님한테 콧등을 비틀려 아파 울고 있는데 해형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조는 “너도 지나치게 친절한 게 아닌가.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 알고 있을 거다.”라고 했다. 이에 그 동료가 시자들의 숙소에 돌아 와 보니 백장은 깔깔대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료는 완전히 얼이 나가고 말았다.
다음날 마조가 설법을 하기 위해 당에 오르자 아직 설법을 시작하기도 전에 백장이 나와서 법석(法席)을 치우고 이미 설법이 끝났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조도 자리에서 내려와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백장도 마조를 따라 돌아갔다. 방장에 돌아온 마조가 “아직 설법도 시작하기 전에 법석을 치운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백장이 “어제는 콧등을 비틀어 아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어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어제는 콧등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아프지 않습니다.” 이에 마조는 “너는 어제의 일을 깊고 분명하게 알았구나.”하며 칭찬하였다. 백장은 예배하고 물러 나왔다. 백장이 마조를 찾아가 친히 그 가르침을 받는 모습이 이와 같았다. 그리하여 이윽고 마조의 법을 이어 받았다.

위에 백장에 귀의한 도속(道俗)이 홍주(洪州) 신오계(新吳界)의 대웅산(大雄山)에 커다란 선원을 건립하여 대사에게 청하여 산문(山門)을 열었다. 험준한 산이어서 대사는 백장산이라 명명하니 바로 이곳이 대지수성선사(大智壽聖禪寺)이다. 대사가 이 산에 산지 몇 달 안 되어 현묘한 불도에 참여하려는 빈객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위산(潙山)·황벽(黃檗)을 비롯하여 장경(長慶)·대자(大慈)·오봉(五峰) 등은 모두 대사의 문하에 속한다. 약산(藥山)의 법을 이어받은 운암(雲巖)도 처음에는 백장의 산문에 참여하였다.

어느 날 대사는 대중들에게 이르기를, “불법은 작은 일이 아니다. 노승이 옛날 마조대사한테 큰 소리로 꾸중을 듣고는 귀가 멍하기를 사흘간이나 계속된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자, 이를 들은 황벽(黃檗)이 자신도 모르게 몹시 놀랐다. 그 모습을 본 대사가 황벽에게 “그대는 마조대사를 뵌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황벽은 “마대사를 뵈온 적은 없으나 지금 스님으로부터 마대사의 말씀을 들으니 그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알겠습니다. 만약 제가 마대사께 갔다면 도리어 제 자손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 대사가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다.”라고 하면서 황벽을 인정하고 “그 깨달은 바가 나와 같을 때는 나의 덕에서 반을 감하고 나를 뛰어 넘을 때는 곧 전수할 바를 능히 감당하리라. 그대는 스승을 뛰어 넘어 크게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라고 황벽을 칭찬하였다. 이에 황벽이 예배하고 물러났다.

-선학원 총무이사·아산 보문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