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 불교 상식

불교설화 - 나를 찾아 떠난 아이

아산 보문사 2016. 9. 11. 14:11

하나

별이 하나 둘 뜨고 있다. 땅에 싹이 돋듯 하늘에 별이 움트고 있다.

 

작은 별들은 무리를 이루고 별 밭을 만들어 반짝인다. 별들은 개울도 만든다.

별들은 강이 되어 흐른다. 달이 나룻배가 되어 떠 있다.

 

아이는 별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찬 개울물 소리다.

두 손으로 해바라기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개울에 자신의 진짜 얼굴이 비칠 것도 같다.

 

아이는 낮부터 개울가 이끼 낀 바위에 앉아 진짜 ''를 찾았다.

암자의 큰방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긴 노스님과 며칠 전에 약속했다.

 

서로 진짜 ''를 찾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이는 밥 먹을 때만 노스님과 만나고 종일 모른 사람처럼 지냈다.

노스님은 큰방으로 들어가고 아이는 암자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는 노스님이 큰방에서 다리를 접고 생각에 잠기는 동안 아이는 개울가 바위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했다.

 

개울가 풀숲에서 반딧불이 성냥불보다 작은 빛을 달고 날았다.

아이는 개울물에서 불티처럼 솟아오르는 반딧불을 보았다.

아이는 암자로 들어가 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반딧불은 밤이 깊어 가는 것을 알려주는 암자의 밤 시계였다.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무당벌레가 기어가다 멈추었다.

무당벌레는 아이 방에서 겨울을 난 친구였다.

녀석은 무리를 벗어나 혼자서 고독하게 지냈다.

 

다른 무당벌레는 검은 바탕에 놀빛 점이 서너 개 박혀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붉은 바탕에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아이가 돌연변이 무당벌레에게 말했다.

"지금 나는 가짜래. 노스님이 그랬어."

무당벌레는 벽까지 기어오르는데 너무 힘들었던지 꿈쩍 안 했다.

 

아이가 다시 말했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

 

무당벌레는 싱겁다는 듯이 대답을 않고 지나가 버렸다.

아이는 기둥을 타고 기어오르는 무당벌레를 향해 투덜거리며 돌아누웠다.

"너도 진짜 네가 아닐 거야."

 

유리창처럼 투명한 하늘이다. 지난밤에 뜬 별들을 감추어버린 하늘이다.

새들이 날아가고 있다. 아이 생각을 비웃듯 흰 똥을 싸고 지나간다.

 

멀리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늘의 품은 너무나 깊고 넓다.

 

새가 지워질 만큼 날아가는 것을 보니 분명 깊숙한 곳이 있다.

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늘 깊은 곳에 물러나 있을 뿐이다.

하늘은 하나도 감춘 것이 없다.

별들을 다 주워 담을 만큼 깊고 넓을 뿐이다.

구름은 가벼운가 보다. 호수의 나뭇잎처럼 떠다닌다.

 

노스님이 '구름이란 비와 밤이슬을 담고 있는 보자기'라고 말씀하셨지.

 

노스님이 아이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지금 산에 가서 봄을 찾아보아라."

"봄을 찾으면요."

 

"가져와 나에게 보여다오."

"꽃을 가져오란 말이죠? 봄은 꽃이니까."

"참 똑똑한 아이구나. 약속하지 진짜 너를 만나게 해줄게."

아이는 곧 암자 뒷산으로 올라갔다.

 

손금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청솔 그늘이 있었다.

그곳은 암자 주위에서 가장 시원한 바람의 목이었다.

 

스님이 얘기했었다.

"바람이 쉬고 있는 중이란다. 그래서 서늘한 거지."

"바람이 잠자는 곳도 있어요?"

"이 녀석아. 바람이 잠자는 곳이란 죽은 곳이다.

바람이 왔다 갔다 하니까 너나 나나 숨 쉬고 사는 거야."

 

아이는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아이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봄을 찾으러 산을 올라갔다.

아이가 찾는 봄이란 바로 꽃이었다.

새싹도 있지만 그것을 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활짝 핀 꽃이어야만 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는 봄을 찾아 산을 헤매고 다녔다.

계곡을 건너면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손등은 가시덤불에 긁혀 피가 났다.

손이 쉽게 나타날 리 없었다.

덜 녹은 눈처럼 하얀 봄맞이꽃을 찾았지만 꼭꼭 숨은 채 꽃망울마저 보기 힘들었다.

 

두 개의 꽃대에 바람개비 같은 꽃을 피우는 쌍둥이바람꽃도 아직은 일렀다.

아이는 깊은 산 속에서 소를 타고 있는 나무꾼을 만났다.

"꽃을 보지 못했어요?"

"왜 꽃을 찾는 거니?"

"봄을 만나려고요."

 

"봄을 만나다니."

"스님과 약속했어요. 그러면 진짜 나를 찾아주겠다고."

"너는 가짜란 말이냐."

나무꾼은 크게 웃더니 말했다.

 

"저 산등성이를 넘으면 산 아래로 물을 떨어뜨리는 절벽이 있다.

이 산중에서는 거기 진달래꽃이 가장 먼저 피어나지."

"거기를 어떻게 잘 아세요?"

", 내 집이 거기 있으니까."

"절벽 위에 집이 있단 말예요?"

"늘 구름이 걸려 있으니까 절벽 위라기보다는 하늘 아래지."

나무꾼은 소를 타고 다시 산 속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이가 소리쳤지만 소는 금세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저도 태워주세요."

"따라 오너라."

아이는 소 발자국을 따라 산길을 올라갔다.

 

아이는 산길을 성큼성큼 가는 소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쫓아가 보지만 소 발자국을 찾기도 힘들었다.

 

땀을 흘리며 잰걸음으로 가보면 소꼬리만 슬쩍 보일 뿐이었다.

산길이 끊어진 곳부터는 가시덤불이 사방으로 우거져 있었다.

 

길이 없으니 소리에 귀를 세웠다.

소가 가는 방향을 알기 위해서였다.

소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마저 끊어지면 아이는 소리쳤다.

 

"아저씨!"

그러면 나무꾼이 소리쳤다.

"힘들면 암자로 돌아가거라."

"싫어요."

아이는 무섭고 힘들지만 돌아가기는 싫었다.

 

다섯

마침내 산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왔다.

흰 구름이 몇 장 걸려 있는 산봉우리가 보였다.

아이는 숲 속을 유유히 헤쳐 나가는 소를 쫓아가지 않기로 했다.

아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아이는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끝에 절벽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계곡에는 군데군데 물이 모아진 못이 있었다.

물이 너무 맑아 개울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조약돌이 새알처럼 하얗게 빛났다.

아이는 옷을 벗고 풍덩 계곡 물 속으로 들어갔다.

 

소를 따라 가느라고 흘렸던 땀이 식었다.

봄을 찾겠다는 생각도 씻겼다.

아이는 나무꾼까지 물장구를 치느라고 잊어버렸다.

아이는 바위에 앉아 몸을 말렸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찬물에 떨었던 몸이 다시 따듯해졌다.

해가 몸속으로 들었다.

"해가 없으면 난 죽고 말 거야. 물이 없어도 난 죽고 말 거야.

바람이 없어도 난 죽고 말 거야, 흙이 없어도 난 죽고 말 거야."

아이는 해와 물과 바람과 흙이 고마웠다.

숨 쉬고 사는 것은 해와 물과 바람과 흙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는 홀로 살 수 있는 존재란 아무 것도 없었다.

서로 의지해 있으니 서로 사랑해야 옳았다.

나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었다.

드러난 나는 나라고 불릴 뿐 진짜 나라고 할만 것은 없었다.

 

해와 물과 바람과 흙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죽고 마니까.

그러고 보니 모두가 한 몸이었다.

아이는 이끼 낀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산길이 없는 숲 속을 헤맬 때보다 계곡을 오르는 것이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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