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불교대학/♣ 불교대학 강의실

인과업보(因果業報)와 윤회 해탈

아산 보문사 2018. 10. 3. 16:06

 

인과업보(因果業報)와 윤회 해탈

 

불교는 업보를 수행이요, 밝은 운명으로 거듭나기 위한 신앙입니다. 나를 둘러싼 몸과 현실의 환경, 그리고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온갖 생활여건들은 나의 업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착한 업을 지으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업을 지으면 악한 결과를 불러온다. 결국 내 자신과 환경을 만든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내 자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과업보의 법칙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과업보를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도 합니다. 내가 지난날에 한 일에 대하여, 상과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한일에 대하여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선한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악한 결과가 오는 것이며, 선한 일을 했는데 악한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했는데 선한 결과가 올 수가 없는 것이 인과업보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두며,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착한 행동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한 행동을 하면 악한 결과가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노력의 씨를 뿌린 사람은 성공의 열매를 거두고,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의 씨를 뿌린 사람은 가정파귀라는 실패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사랑의 씨를 뿌리면 기쁨의 열매를 거두고, 미움의 씨를 뿌리면 불행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어제의 나의 행동이 오늘의 나를 결정하고, 오늘의 나의 행동들이 내일의 나를 결정합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요, 내일은 오늘의 결과입니다. 어제를 떠나서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을 떠나서 내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있으면 과()가 있고, ()이 있으면 보()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의 운명을 만드는 주인입니다. 내가 하루하루 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이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갑니다. 인과(因果), 업보(業報)는 내가 만들어서 내가 받는 것입니다. 남이 내 운명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과업보(因果業報),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알고, 매일매일 선근(善根)의 씨를 뿌려서 내일의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순간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없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종자가 되고 그것이 점차 성장하여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오는데 이것이 곧 인과이고, 업보입니다.

()”이란 무엇인가? “인과업보(因果業報)”의 줄인 말입니다. 어떤 동기로 무슨 일을 행하여 돌아오는 결과를 업보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업()으로 살아갑니다. 장사를 하면 상업이요, 농사는 농업이며, 공장은 공업이고, 건축은 건설업, 교육은 교육사업, 병원은 의료업, 일은 작업 등 인간 삶 자체가 업이고, 세상 그대로가 업의 밭입니다.

 

문제는 저마다 주어진 업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있습니다. 나쁜 마음과 못된 말, 그릇된 행동으로 업을 행하면 그것이 악업이 되고, 바른 마음과 좋은 말, 착한 생동으로 업을 수행하면 그것은 곧 선업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둘러싼 현실의 환경, 나의 몸과 성장과 함께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나의 업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착한 업을 지으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업을 지으면, 악한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운명과 환경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끝남과 동시 없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고 점차 성장하여 훗날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 인과업보입니다.

 

전생과 금생과의 인과를 보면 이러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고 사는 부부인데도 사이가 무척 나빴습니다. 그들의 전생을 알아보니 서로가 원한이 맺힌 사이었습니다. 내외간에 사이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니 전생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였고 어떤 이는 어머니와 아들 관계임을 알았습니다. “설마?”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본래 인과란 그렇게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혼은 존재하고 중생은 업보에 따라 윤회를 거듭하며, 인과는 지은대로 받습니다.”는 부처님 말씀이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분명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에 처했을 지라도 남을 원망하고 탓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이 잘못 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며 행위를 개선할 때 악업을 덜 짓게 됩니다.

 

불교 수행(修行)의 행()()”을 말하는 것이고, 업은 일상생활 그 자체입니다. “()”는 닦는다는 말로써,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잘못된 것을 수정하여 바로 닦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광업보를 가벼이 여기면 안 됩니다. 항상 악업을 경계하고 선근인연 공덕을 닦고, 보다 철저한 수행정진을 통하여 생사윤회와 업보의 고뇌를 벗어나 해탈열반의 세계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업보란 우주의 균형과 평등의 법칙입니다. 어떤 업()을 내보냈느냐에 따라 내보낸 것과 동일한 것이 보()가 되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온전한 두 가지 행()은 선행(善行)과 수행(修行)입니다. 선행은 복을 가져오고, 수행은 열반을 가져옵니다.

 

'보문사 불교대학 > ♣ 불교대학 강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문사 불교대학  (0) 2020.12.25
바라밀다(波羅蜜多)의 뜻?  (0) 2017.06.04
마음의 종교   (0) 2017.05.29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0) 2016.07.02
오욕(五慾)  (0) 201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