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운스님 법어/♣ 禪을 즐겨라

禪을 즐겨라 - 목주, 기봉 높았고 말은 매우 험준

아산 보문사 2017. 3. 7. 13:51

목주, 기봉 높았고 말은 매우 험준

선을 즐겨라 38-제2편 선승과 공안



44. 목주도명(睦州道明 753∼850 南嶽下)

목주의 진존숙(陳尊宿)은 강남진씨(江南陳氏)의 아들이다. 휘명(諱名)은 도종(道蹤) 도명(道明)이다. 스님이 태어날 때 붉은 빛이 방을 가득 채우고 상운(祥雲)이 하늘을 덥기를 열흘간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눈에 중동(重瞳)이 있고 얼굴에 칠성(七星)이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얼굴 생김새가 기이하여 범속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개원사에 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스님을 만났는데 옛친구를 만난 듯이 매우 기뻐했다. 곧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청하여 출가했다. 지계가 아주 청정했을 뿐 아니라 삼장에 두루 통달했다고 한다. 여러 곳을 행각수행하다가 황벽희운 선사에게 계합하는 바 있어 거기에 머물러 경지를 득도한 후 그 법을 이었다. 득법 후 사부대중의 청에 따라 목주의 용흥사(龍興寺)에 주석하면서 크게 종풍을 떨쳤다. 선사의 곁에는 늘 1백 여 명의 구도자가 따랐다고 한다.
목주선사의 기봉(機峰)은 매우 고기하고 그 말 또한 매우 험준하여 학인을 대하는데 아주 악랄하였다. 누가 와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느닷없이 멱살을 잡고 “자, 무어라고 말하라.”고 다그치는게 보통이다. 그리고 대답하기 곤란해 하는 것을 보고는 “진시의 탁력찬(진시황이 아방궁을 지을 때 썼던 큰 바퀴로 이후 쓸 용도가 없어 무용지물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라고 큰 소리로 꾸짖곤 문밖으로 내쫓았다. 운문선사가 목주스님을 상견할 때 이러한 취급을 당하여 한 쪽발이 문에 끼어 대오했다는 것은 총림의 재미있는 일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그를 사람들이 신복하여 ‘진존숙(陳尊宿)’이라 불렀다.
어느 해 그는 절을 나와 종적을 감추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대신 손수 짚신을 만들어 팔아 그것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또 짚신을 길바닥에 내다버려 나그네들이 신고 가도록 배려했다. 그로 해서 목주에겐 ‘진포혜(陳蒲鞋)’라는 호가 남아있다.
스님은 임종 때 문인들을 앞에 두고 “이 세상과 인연이 끊어졌기 때문에 하직한다.”고 말하곤 결가부좌하여 입적했다. 이때가 세수 98세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향신(香薪)으로 화장하였더니 사리가 빗방울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인들은 그 영골을 수습하여 상을 새긴 후 그 덕을 우러렀다.

  
▲ 삽화=강병호 화백



목주약허한(睦州掠虛漢)
어느 날 한 스님이 목주화상을 찾아와 절에 머물게 해 달라 청했다. 목주화상이 그에게 “어느 절에 있었느냐?”고 묻자 그 스님은 “꽥”하고 일할했다. 목주화상이 “허, 이 노승이 한방 맞았군.”하니 그 스님이 또 “꽥”했다. 목주화상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하니 또 “꽥”“꽥” 3할 4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목주화상이 “그 다음엔 어쩌겠단 말이냐, 그대로 계속 소리만 지르고 있을 셈이냐?”하고 꾸짖으니 기가 죽어 스님이 잠자코 있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목주화상은 그 스님을 후려치며 “이 얼간이[掠虛頭漢]같은 놈아.”하고 외쳤다. 《벽암록》 제10

45. 엄양존자(嚴陽尊者 ?∼? 南嶽下)

엄양산(嚴陽山)은 무령현의 동남쪽 400리 거리에 있다. 조주화상의 사법상수 제자로 휘명이 선신(善信)이란 사람이 있었다. 엄양산의 기수(奇秀)함을 즐기며 암자를 지어 살고 있었다. 계율과 도덕이 뛰어나 일세에 존숭받으며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삼가고 엄양존자라 칭했다.
당의 천우때 강서의 제치유공(制置劉公)이 신흥원(新興院)을 창설하여 존자를 맞아 있게 하였다. 이곳에서 어느 스님이 묻되 “이 신흥의 물은 어떠합니까?”하니 존자가 말하길 “눈 앞의 벌거숭이 강이다.”고 했다. 존자는 또 이 스님을 전송할 때 게로 이르되 “몸은 구름과 같고 얼굴은 조(祖)와 같다. 몸속에 이르러 반려 없고 지팡이를 옆으로 메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구나. 바로 천봉만봉에 들어간다.”하였다.

엄양일물(嚴陽一物)
엄양존자가 조주화상에게 물었다. “일물부장래(一物不將來 아무 일도 없는 해탈의 사실)일 때는 어떻게 합니까?” 조주화상이 “방하착(放下着 내버려두라)”하시니 엄양존자가 다시 묻기를 “아무 일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버리라 하십니까?”하였다. 그러자 조주화상은 “그렇게 고집한다면 짊어지고 가라.”하셨다. 《종용록》 제57

 엄양존자 계율 도덕이 뛰어나 존숭받아
 진조상서 운수승이 오면 반드시 공양

46. 진조상서(陳操尙書 南嶽下)

진조상서(陳操尙書)는 배휴(裵休)와 같은 시기의 관리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의하면 목주의 자사 진조상서는 법을 목주의 진존숙에게 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한 책에는 진조가 이전에 목주의 자사일 적에 기흥사(記興寺)의 도명선사로부터 법을 이었다고 한다. 뒤에 상서가 되었고 당시 유명한 거사로 이름을 날렸다.
진조는 운수승(雲水僧)이 오면 반드시 불러들여 음식을 내어 공양했다. 또 돈 30량을 보시하고 난 뒤에 문답을 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었다. 한번은 진조가 강주에 있을 때 운문선사가 운수의 모습으로 찾아갔다. 진조는 그런 줄도 모르고 평소와 같이 음식을 공양한 뒤 문답에 들어갔다.
진조: 유서(儒書)를 묻지 않겠다. 3승 12분교도 묻지 않겠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행각하고 있는가?
운문: 상서, 당신은 지금 몇 사람에게 묻고 있는가?
진조: 지금 상좌에게 묻고 있다.
운문: 당신의 교의(敎意)는 무엇인가?
진조: 황권적축(黃卷赤軸 불경 속에 다 있다는 뜻)이로다.

-선학원 총무이사 · 아산 보문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