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 불교 상식

관음보살 & 지장보살

아산 보문사 2016. 2. 26. 16:11

갑자기,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매우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둘이 만나게 되면 세상의 급격한 변화가 오는 시발점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는데, 너무 돌출적으로 생각이 솟아올라 당황스러웠다. 늘 하던대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이 둘이 나란히 있는 그림도 발견하게 되었고 개천록(開天錄)이라는 지리산의 숯 굽는 노인의 비서를 번역했다는

책도 발견하게 되었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에 대한 사연이 있어 일부 발췌해 올려본다. 다음 글은 구름, 이경숙님의 번역 내용이다.

 

開 天 綠 (12)

초기에 천계의 환인과 각 연방의 단군들이 모두 선인들이어서 서로 신법( 神法)으로 교통(交通)하고 서로 뜻을 전하여 수만리를 격하고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환인의 령()과 훈()이 전하여져 왔지만 이제 사람들이 육식으로 다른 생명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서 그 피가 탁해지고 살생의 업이 쌓여 그 영력(靈力)이 쇠미해 지므로 천부경이 말하는 바의 하늘의 기가 그대로 화하여 된 개벽 이후 첫 인간들의 신성과 청정한 심력이 퇴화되어 몇 리 만 떨어져도 의사를 전하지 못하고 일 년을 걸어도 국()의 경계를 벗어나 지 못하며 더구나 하늘과 사람 사이의 교감(交感)은 막히어 환국 말기에는 오히려 지평선 저 너머에 다른 연방들이 있음조차 잊혀지더니 지위리 환인 대에는 12연방이며 옛 선인들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전설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서로 만 리를 격해 있는 연방들은 서로를 잊고 희미한 옛 기억을 신화로 간직한 채 서로 독자적으로 문명의 여명을 열어가게 되었다. 지위리께서 천계를 봉하실 무렵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밀이국은 그 전성기를 열고 있었고 이집트에는 나일강 유역에 훗날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태양신의 아들들이 서쪽으로 부터 이동해 오고 있었어요. 독로국에 패하여 금산의 아래로 이동해 온 직구다국은 히말라야와 티벳 고원의 사이에서 수많은 소왕국으로 분열 되었는데 환국의 신교(삼신교)를 계승하여 많은 선인들이 도를 닦고 덕을 쌓으니 여러 연방 중에서 가장 환국의 신교를 굳건히 유지하여 훗날 치우천황 대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로 불리는 묘선공주 자매가 태어났으며 그 천년이후에는 인류사상 가장 큰 정 각을 이룬 석가모니불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양자강 이남은 그때까지도 유인원의 세계였으며 황하유역은 천계에서 흥안령 산맥을 넘어온 소수의 사람들이 황토 속에서 미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세계각지의 사람들 간에 교통은 끊어지고 소식은 두절되어 서로 간에 그 존재 조차를 모르게 되어 버렸다. 삼청궁은 동으로 천해에 닿아 있어 취선루에 올라서면 푸르고 맑은 천해 가 한눈에 보였는데 아침에 해가 뜰 때는 수면 가득한 안개 위로 햇살이 퍼지면서 오색영롱한 서기가 삼청궁을 감싸듯 피어올랐다. 서쪽으로는 자정 전을 지나 자하루로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소선정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삼청궁의 정문인 태정문이 있었고 그 안과 밖은 커 다란 뜨락이었는데 바닥에는 모두 청석이 깔려 있어 비오는 날에도 흙을 묻히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 태정문을 마주 보면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소도가 서 있었고 그 주위 십리에 걸쳐 천호에 달하는 인가들이 있었다. 흙으로 벽을 바른 야트막한 집들과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짐승의 가죽으로 둘러친 움막과 같은 집들 있었고 천계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는 동굴을 이용해 거주로 삼은 마을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천계 주위의 넓은 들판에는 양과 소가 무리지어 다녔고 사슴들이 뛰어 다녔으며 가끔씩 수만 마리가 넘는 소떼들이 지나 가고는 했다. 한 번씩 천계의 장정들이 이런 소떼나 양떼를 몰러 나갈 때는 온 천계가 떠들썩할 정도였다. 운사와 우사가 사냥에 앞서 환인께 고하고 소도에 올 라 엄숙하고 경건하게 하늘에 제를 올렸다. 그들은 여름 사냥을 나가면 달이 한번 차고 기우는 시간이 지나야 돌아오기도 했는데 소나 양떼를 쫓아 수 백리 밖까지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수백 마리가 넘는 소나 양을 몰 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하였다.

 

 평화스러운 천계였지만 늘 그렇게 안온하지만은 않아서 때때로 사나운 부족들과 싸우는 때도 있었다. 일정한 정착생활을 배우지 못한 종족들이 사냥감을 찾아 광활한 대륙을 옮겨 다녔는데 그들이 천계 주위에 나타나면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사냥을 나갔던 천계사람이 그들에게 죽거나 부상당해 돌아오기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이 끌려가기도 했다. 천계에는 이미 남자들이 그러한 외부종족을 쫓아낼 힘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남자들은 언제나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계의 직할지 내에서만 삼백 명이 넘는 장정들이 한시각내에 모일 수 있었고 간혹 큰 무리의 종족이 천계의 접경을 침범해 올 때는 천계 주위 오 백리에 산재한 부락마다 환인의 파발이 달려 각 부락에서 수천 명의 전사들이 모였다. 천계를 침범하사들을 보면 기겁을 하고 도주했던 것이다. 이미 천계의 장정들은 끝에 청동으로 만든 촉을 단 창을 쓰고 있었고 전사들의 우두머리들은 청동검을 휘둘렀다. 돌도끼나 돌창, 또는 돌칼을 들고 덤빈 원시종족들은 천계의 전사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싸움에 져서 달아나거나 아니면 무리 져서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수백 명이 넘는 유랑족들이 잡혀서 천계로 끌려오기도 했는데 환인께서 이들을 타일러 천계 내에 살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지위리 환인대에 가장 커다란 세력으로 천계를 침범해 왔던 무리가 바로 반고가한의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천해의 남쪽에서 짐승의 떼를 쫓아 북으로 올라 왔던 시림들이었다. 그런데 그 종족의 우두머리인 반고란 자는 머리가 영리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또한 어디서 배웠는지 신선의 술을 익혀 여러 가지 호풍환우하는 재주를 부렸다. 맨 처음 천 삼 백리 남쪽에 있던 선비 부락에서 연락이 왔을 때 환인께서는 의례히 있어 왔던 조그만 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다급한 사자들이 남쪽의 각 부락에서 달려 왔으며 여러 번의 싸움에서 천계의 장정들이 다치고 죽었으며 수많은 가축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해서, 환인의 명을 받고 운사가 천계의 전사들을 인솔하고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운사의 큰 아들인 혁덕도 이때에 처음으로 아비를 따라 싸 터로 떠났다. (구름 주 : 이혁덕이 전생에 내가 운사와의 사이에 낳은 첫 아들임, 믿거나 말거나) 그때 혁덕의 나이가 열여섯이었고 그 아래로 다섯의 아우가 있었는데 제일 늦게 태어난 애만이 딸이었다. 반고와의 싸움 이 있던 해 애만은 다섯 살이었다.

 

 

 開 天 綠 (15)♣

 환인께서 천계에 오신지 벌써 백오십년이 넘어 환인의 흰머리와 수염이 온몸을 덮고 있었고 자애하신 표정과 지혜에 밝은 눈만이 여전하였다. 환인께서는 풍백에 명하여 삼청궁의 모든 보화를 건네주셨는데 그중에 약 간을 따로 남기시면서 이것은 나중에 달라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또한 삼청궁의 창고를 열어 저장되어 있던 모든 양곡을 내어주었다. 마침내 환인께서 주렴을 내리시고 돌아앉으시매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며 떠남을 슬퍼했다. 환웅께서 커다란 녹각장을 높이 들어 출발을 명하자 이백 개의 북이 큰소리로 울리고 각 부족의 표식을 따라 사람 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환국의 각 나라에서 모인 기마천령이 5십 인씩 열두 대로 나뉘어 각 부족의 선두에서 향도하였고 사람들은 자기 부 부족의 표식을 따라 열 지어 움직였다. 천계 주위에는 사람과 짐승들이 일으킨 먼지가 하늘을 가렸고 소떼들의 울음소리, 달리는 말들의 발굽소리, 천령들의 고함소리, 아이들 의 울음소리들이 뒤섞여 와글거렸고 사람들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백호의 땅을 그리며 희망과 불안이 엇갈리며 머나먼 여정 의 첫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람들의 모습이 아랑고개 너머로 사라진지 닷새째 되는 날,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천계는 휑하니 비어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을 집 들이 늘어선 거리에 먼지바람만 소리 내어 지나갔으며, 더 이상 아이들의 소리도, 아침이면 들리던 닭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삼청궁에서 환인을 모시고 살았던 이사, 이백의 가족들은 가장 나중에 출 발했는데 그 때는 이미 환인께서는 삼청궁을 폐하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모두 다 떠나고 텅 빈 삼청궁의 마당에 몰려온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이 반고와 그가 데리고 온 종족들이었다. 반고도 환인께 나아가 자정 전 마당에 엎드려 하직을 고하고 저들 무리를 데리고 남쪽으로 가겠다고 주 청하였다. 환인께서는 그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목소리만 들려 나왔는데 환인은 그가 환웅을 따라 같이 가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따로이 남겨둔 재보들을 가지고 떠나라 하시고, 앞으로 5천 년간 너의 자손들이 천계의 자손들을 위한 벽이 되리라 하셨다.

 

 반고가 감읍하여 일곱 번을 절하고 환인께서 주신 재보들을 거두어 남쪽으로 떠났다. 훗날 반고는 무리와 함께 황화유역에 도착하여 스스로 반고가 한이라 칭하고 황토인의 나라를 세웠는데 중국이 자기들의 시조라고 말하는 반고가 바로 이 사람이다. 반고가 황토인의 나라를 세운 후 이천년 동안 환웅이 연 신시의 속방으로 남게 되며 신시의 환족 중에서 사람을 가려 그 땅을 통치하러 보내게 된다. 이렇게 환웅의 명을 받들어 속방인 황토를 다스렸던 사람들이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황토인들은 신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상고의 역사 중 가장 대규모였던 이쳄 역사서인 "신지(神誌)"에 "황제(簧帝)의 반란"으로 기록되어 남는다. 미개했던 황토인을 이끌고 신시배달국의 치우천황과 아홉번의 싸움 끝에 독립하게 되는 역사상 첫 한족(漢族)의 지도자가 이 황제이다.

 

 대륙의 남과 북을 무대로 장대한 서사시와 같았던 두 영웅의 전쟁은 나중에 신시의 역사에서 상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치우천황에게 여덟 번 패하여 여덟 번이나 죽을 뻔 했던 황제를 도와서 아홉 번째에 이기도록 해준 것이 훗날 석가세존의 대에 관세음보살이라고 불리었던 서왕모(지장보살인 지선공주의 언니로 묘선공주라고도 불린다)였다. 왜 서왕모(西王母)가 황제를 도와 지나를 독립시켰는지, 거기에는 미래세를 내다보는 관세음보살의 숨은 배려가 있었다. 그 의미를 오늘날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글쎄,,,,, 답답하다,,,,

 

작성자 트윈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