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배우기/♣ 법회.칼럼

석주스님 ‘포교’ 계승한 으뜸 신행 도량으로 유명 아산 보문사

아산 보문사 2016. 1. 8. 18:12

법당과 당우 모든 주련 한글 ‘눈길’
불교대학 개설 7백여 졸업생 배출

 

▲ 아산 보문사는 석주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송운 스님이 일구고 있는 절이다. 큰법당과 관음전, 지정전 글씨는 모두 석주 스님의 친필 한글로 쓰여 있어 스님의 3대 원력이었던 역경사업을 되새기게 한다.

 

 

아산시는 20년 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된 도농복합도시로 왕실온천인 온양온천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가 소재한 유서 깊은 역사 도시로 유명하다. 이런 아산시에서 ‘가볼만한 절’을 묻는다면 단연 보문사(주지 송운 스님)를 꼽을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석주당 정일 큰스님이 말년을 보낸 절이자 현재는 크고 작은 소임으로 아산 지역사회 불법홍포에 일익하고 있는 수행과 포교 도량이기 때문이다.

 

▲ 큰법당 현판과 주련.

보문사는 서울 칠보사에 주석하던 석주 스님이 당시의 온양 지역에 포교원을 개설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1978년 창건한 절이다. 선학원에는 1980년 등록됐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석주 스님의 부도와 사리탑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석주정일대종사기념관이 서있다. 석주 스님의 요사채였던 염화실을 개조한 기념관에는 스님이 생전에 사용한 가사, 장삼, 육환장, 안경, 도자기, 벼루를 비롯한 유품과 유묵을 전시했다.

종무소와 불교대학교무국이 들어선 누각 사이로 계단을 올라가면 세 전각과 계단 위층의 누각이 안뜰을 폭 감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과 지장전이 마주보고 섰는데, ‘큰법당’ ‘관음전’ ‘지장전’이라고 쓰인 석주 큰스님의 친필 한글 현판과 주련이 눈길을 끈다. 대웅전 뒤편 동산에 올라앉은 삼성각과 종각까지, 보문사는 수행과 포교도량으로 손색이 없도록 가람배치가 되어 있다. 가는 비가 흩뿌리는 중에도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이니, 꽃 피는 봄철과 단풍지는 가을에는 그 모습이 어떨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 관음전.

 

 

▲ 지장전.

 

 

“스님들이 절을 세울 때는 출가본분을 다하기 위해 수행과 기도를 우선으로 하지만 포교 없는 도량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또 팔만대장경의 우리말 번역이 완료됐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번역해야 할 많은 경전이 있지요.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제자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이러한 삼대사업이 우리 불교의 미래를 중흥하는 중차대한 불사입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15년간 절을 이끌어온 송운 스님은 포교·역경·도제양성 등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삼대사업을 주창했던 석주 스님의 유지를 계승하는 한편 아산시 사암연합회장 소임을 맡아 지역사회 불교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창립 당시 자그마한 암자에 불과했던 보문사가 이제는 아산에서 가장 큰 절로 이름났으니 어른 스님의 뜻을 널리 선양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보문사는 사내에 다양한 신도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신도회 산하 신도교화위원회, 운영위원회, 관음회, 지장회, 합창단, 불교대학, 불교대학 출신 신행단체 연등회, 마하야나 자비봉사단, 108성지순례단, 거사림회가 유기적으로 사찰을 이끈다.

수행하면서 포교하는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만큼 불교대학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8년 전인 2007년 불교대학을 개설한 후 지금까지 7백여 명의 졸업생과 30명의 포교사를 배출했다. 종단이 제시한 커리큘럼에 의해 기본반 3개월, 전문반 1년 과정으로 운영하며 동국대학교 교수와 법사를 초빙해 강의의 질을 높였다. 경전 강의의 일부는 송운 스님이 직접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타 사찰의 불자들이 등록해 공부하고 원찰로 돌아가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송운 스님은 “아산 지역의 모든 불자들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마하야나 자비봉사단은 분기마다 한 차례 이상 지역 어르신이나 노숙자를 대상으로 점심 공양을 올린다. 108성지순례단에서 봉사 기금을 지원한다. 매년 연말에는 보문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송년법회를 열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해 아산시에 전달하고 있다.

 

▲ 보문사는 아산에서 가장 큰 절로 이름났다. 사진은 보문사 일주문.

 

 

▲ 석주 스님 기념관. 스님의 요사채였던 염화실을 개조해 생전에 사용한 유품과 유묵을 전시했다.

 

 

아쉬운 것은 어린이법회다. 어린이법회가 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 송운 스님이 지도한 칠보사어린이법회는 서울 조계사 연화어린이회, 녹야원의 녹야어린이회와 함께 대표적인 어린이 법회로 꼽혔다. 스님은 칠보사어린이법회와 칠보어린이합창단을 운영하면서 10여 년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정기공연을 선보였고, 세 차례 미국과 일본 순회공연도 가졌다. 당시 송운 스님이 작사한 <해탈의 기쁨>과 <부처님 오신날>은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

“어린이 포교는 예전 같은 방법으로는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지요. 현대화 된 포교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젊은 시절 어린이 포교에 열정을 쏟으면서 칠보사어린이법회를 꾸려왔던 스님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그 외에도 송운스님은 1980년대 도미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불광사를 창립, 교민과 청소년포교 즉 해외포교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스님은 강조한다. “한국불교의 미래는 포교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는 매우 중요 합니다.”

 

▲ 송운 스님은 큰법당에 석주당 정일 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누구나 참배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세월 큰스님께서는 출가사문의 길을 직접 지도하여 주셨습니다. 오늘이 내가 있도록 키워 주신 스승님 그 크신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송운 스님은 1960년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966년 19세부터 석주 큰스님 문하에서 공부하며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지난 11월 봉행된 석주 스님 열반 11주기 다례재를 마친 송운 스님은 소회가 남다르다. 좀 더 오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큰스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법향은 더욱 그립다.

“큰스님 문하에 들어가서 어른을 모시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복이었어요. 항상 큰스님의 철저한 수행과 보살행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님은 관음보살의 자비와 보현보살의 행원으로 한평생을 중생제도에 헌신하신 이 시대의 산 부처님이셨지요. 본래 서원 잊지 마시고 하루 속히 사바세계로 돌아오시어 다시 일대사인연을 밝히시고 널리 뭇 중생들을 이롭게 하소서! 기원 드립니다.”

송운 스님은 출가 수행자의 본분은 전법도생에 있다며 가람을 수호하고 철저한 수행과 포교로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이를 위해 열심히 정진할 것이라 했다.

 

▲ 석주스님 기념비와 그 뒤로 부도탑이 보인다.


2015년 12월 10일 (목) 13:26:32     불교저널    아산=모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