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주 큰스님

불교신문.2011년) ‘화’를 무장해제 하다

아산 보문사 2017. 12. 11. 16:52

 ‘화’를 무장해제 하다

 

   선각스님        승인 2011.12.12 14:37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面上無嗔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口裡無嗔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心裡無嗔是眞實)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無染無垢是眞常).

- 문수보살 게송

 

 

2004년에 입적하신 ‘도심속의 도인’, ‘자비보살의 화현’ 또는 ‘천하를 사랑하셨던 분’이라 칭송되었던 석주 큰스님은 필자도 마음으로 부터 존경하고 늘 닮고자 했었다.

 

1983년부터 큰스님께서 주석하셨던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서 학교를 다니며 큰스님 시자를 살면서 주옥같은 가르침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큰 행운중 하나이다.한 번은 찬바람이 도는 늦은 가을, 세상살이가 힘들다며 남루한 옷차림에 술 냄새를 풍기며 석주스님을 찾은 거사가 있었다.

 

그 거사는 스님 방에서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만 쳐다보며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는데 큰스님은 아무런 말없이 담요를 갖다 덮어 주었다. 냄새가 방을 진동했지만 깰 때까지 그대로 놔두라 지시하고는 평소에 하시던 대로 한쪽에서 글을 쓰셨다.

 

읊다보면 언제 화 났었나

하는 마음이 새롭게 생겨

 

냄새가 밖으로 나가게 문을 좀 열어 놓자고 해도 “지치고 힘든 중생의 냄새이니 깰 때까지 부산하게 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 손님이야 마루에서 만나도 된다”라고 말씀했다. 약 네 시간이나 큰스님 방에서 단잠을 잔 거사는 잠이 깬 후 큰스님께 눈물을 흘리며 삼배를 올리고 사찰문을 나섰다.

 

큰스님은 당대의 명필일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자비로워서인지 불사를 앞둔 사찰들이나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분들이 끊임없이 큰스님을 찾아와서 글씨를 부탁했다.

 

팔십의 노구에 때로는 병중에도 힘드실 법도 해서 한 번쯤은 거절할 법도 한데, 10년의 세월을 옆에서 바라봤지만 한 번도 마음으로부터라도 싫어하거나 거절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시자의 하루 일상도 2시간 동안 먹 갈기로 일과가 시작됐다.

처음 몇 년은 중앙승가대 불사, 군법당 마련을 위한 전시회 등으로 먹을 계속 갈아 힘도 들었지만, 큰스님 방에서 먹 가는 시간동안 부처님 말씀이나 옛날 조사스님들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점차 방안가득 먹향으로 가득해질 때쯤이면 큰스님이 어떤 글을 새로 쓰실까 하고 기대가 되곤 했다. 붓을 잡으면 매일 빠지지 않고 쓰신 경구중에는 <법화경> 법사품에 있는 자실인의(慈室忍衣, 자비로써 집을 삼고 참음으로써 옷을 삼으라)와 <대반열반경>에 있는 자비무적(慈悲無敵, 모든 만물을 자비로서 대하면 적이 없다) 등이 있는데 이는 부처님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해답이다.

 

그만큼 매일 대하는 큰스님의 자비 실천의 모습과 하심(下心)하는 삶이 내가 가야할 수행자의 삶의 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는 자비와 겸손함으로 만물을 대하고 또한 중생을 대할 때에 마음의 평화가 그곳에 있었고 이것이 불교 최고의 포교라는 점을 일깨워줬다.

또한 어디에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수행의 지침이자 포교의 지침으로 삼는 문수보살 게송도 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요즘 뉴스를 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화를 다스릴 줄 몰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화를 다스리고 싶거나 욕심을 다스리고 싶으면 마음 비우는 공부를 하면 된다. 화를 순식간에 다스리며 무장해제 할 수 있는 경구가 있는데 바로 문수보살 게송에 있는 말씀이다. 만약 화가 나는 순간에 마음속으로 이 게송을 읊다보면 언제 화가 났었나 할 마음이 새로이 생긴다.

 

[불교신문 2776호/ 12월14일자]

 

선각스님  미국 세인트루이스 부다나라(불국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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